너, 입술이 너무 빨간거 같아

2024. 6. 12. 10:04연애

너 입술이 너무 빨간거 같아

 

나이를 먹으니 어느순간 화장법은 똑같아졌다.

가지고 다니기 좋은 팔레트, 내가 제일 잘 어울리는 립스틱 

 

헤어지기 직전 데이트를 할 때, 남자친구가 나에게 입술이 너무 빨간 거 같다는 얘기를 했다. 맨날 바르던 그 색상인데, '입술이 너무 빨간가?' 문득 거울을 보니 어제 친구가 입술색이 예쁘다며 무슨 제품 쓰냐고 물었던 얼굴이 엘레베이터 안 푸르스름한 형광등 조명 아래 촌스럽게 비춰지고 있었다. 내가 나이에 걸맞지 않게 너무 새빨간 입술을 하고있는 것이 아닌가 창피한 마음에 얼굴이 화끈거렸다. 

 

입술이 너무 빨갛다는 얘기를 들은 날, 집에 가는 지하철에서 남자친구가 좋아한다고 몇번이나 다시 틀어달라했던 그 노래를 들으면서 내가 바르면 촌스러울게 뻔한 요즘 유행하는 립스틱 색상을 주문했었다. 

 

이별했다고 어른체면에 소리내 울 수 없어서 꾸역꾸역 버티며 일하고 들어온 날. 엘레베이터에서 내렸을 때 집 앞에 택배가 덩그러니 굴러다니고 있었다. 뜯어볼 기운도 없어서 신발장에 발로 툭툭 쳐서 집어넣어 놓고 대충 씻고 생각해보니 내가 뭘 샀는지 기억이 났다.  

 

요즘 트렌드인 내츄럴한 색상의 립스틱

 

그 사람이 헤어지면 죽을 거 같다며 나한테 이별을 고하고 한달음에 찾아간 연인의 얼굴을 본 순간 그 사람 마음속에 있는 다른 사람과 비교해서 내 입술이 빨간 거 같다는 걸 뒤늦게 깨닳았다.

 

연한 색상이 어울리는 나랑 정반대되는 여자 

웃는 얼굴이 너무 맑고 지켜주고 싶은 마음이 드는 사람 

 

사소한 지적이 사실은 그냥 나를 매력적이지않다 느끼는 신호였던 거다. 입술이 너무 빨간거 같다는 말. 머리결이 좀 푸석해보인다는 말. 그 모든게 그냥 마음속에 있는 다른 매력적인 사람에 비해 내가 그렇다는 얘기였다. 

 

아침에 일어나 박스를 뜯어 립스틱을 발라보았다.

그 사람이 원했던 립스틱 색은 나에게 안 맞았다.

 

'연애' 카테고리의 다른 글

좌석 1열 불청객  (1) 2024.06.12
어제는 숙면을 취했다  (0) 2024.06.12
생각의 방향 바꾸기  (0) 2024.06.12
남 때문에 일희일비하지 않기로 했다  (0) 2024.06.12
남자친구와 헤어졌다  (1) 2024.06.11